예상을 비웃듯 어두워지던 사직의 밤

2026년 8월 18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의 홈 경기는 시작 전까지만 해도 롯데의 우세가 점쳐졌다. 마운드에는 믿음직한 에이스 제레미 비슬리가 올랐고, 상대는 비교적 신인급인 전준표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선발 무게감만 놓고 본다면 롯데가 초반부터 주도권을 잡고 경기를 쉽게 풀어나갈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야구공은 굴러가 보기 전까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었다. 경기 초반부터 흐름은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키움 타선은 매서운 저력을 발휘하며 비슬리를 집요하게 흔들었다. 1회초 NC에서 키움으로 이적한 후 맹타를 뽐내고 있던 데이비슨 선수의 선제 2점 홈런을 시작으로 2회초에는 빅이닝을 만들어내며 롯데의 마운드를 맹폭했다. 반면 롯데 타선은 전준표의 호투에 묶여 번번이 득점 기회를 놓쳤다.

6회초가 끝났을 때 전광판에 찍힌 점수는 8:0이었다. 8점 차라는 절망적인 격차 앞에 사직구장의 열기는 차갑게 식어갔다. 에이스를 내세우고도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경기에 모두가 이대로 무기력한 패배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믿기지 않는 7회말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넉넉했던 점수 차, 키움의 방심이 부른 자충수

6회까지 8:0으로 앞서고 있던 키움은 승기를 완전히 잡았다고 판단했다. 선발 전준표가 6이닝 무실점으로 롯데 타선을 봉쇄하며 완벽한 투구를 펼쳤고, 타선 역시 홈런 두 방을 포함해 8점이라는 넉넉한 리드를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다. 승패의 추는 이미 기울어진 것처럼 보였고, 키움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이러한 여유 속에 키움 벤치는 7회말부터 본격적으로 불펜진을 가동하는 선택을 내렸다. 6이닝 동안 쾌투를 이어가던 선발 전준표에 이은 두 번째 투수로 1군 경험이 적은 박정훈을 올렸다. 여유로운 상황에서 경험을 올려주려는 시도였겠으나 이것이 치명적인 자충수가 되고야 말았다. 박정훈은 선두타자 전민재에게 볼넷을 주고, 장두성의 타구 때는 유격수 포구 실책 불운이 겹쳤으며, 다음 손성빈에게는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주며 제구가 심각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무사 만루 상황을 만들었다.


다급한 마운드 교체, 황성빈의 2타점 2루타가 쏘아 올린 신호탄

무사 만루라는 예상치 못한 위기에 직면하자 키움 벤치는 다급해졌다. 결국 제구를 잡지 못한 박정훈을 서둘러 내리고 배동현을 구원 투수로 마운드에 올렸다. 어떻게든 급한 불을 끄고 흐름을 끊어가겠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배동현의 등판은 오히려 불붙기 시작한 롯데 타선에 휘발유를 들이붓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마운드에 올라오자마자 타석에 들어선 황성빈에게 우측 선상을 꿰뚫는 날카로운 2타점 2루타를 얻어맞은 것이다. 내내 0의 행진을 이어가던 전광판에 마침내 롯데의 첫 득점이 새겨지며 2:8 추격이 시작되었다.

영봉패의 수모를 감당해야 할 것 같았던 사직야구장은 황성빈의 2루타 한 방에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투수 교체로 위기를 벗어나려던 키움의 계산은 완벽하게 어긋났고, 굳게 닫혀 있던 키움 마운드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이는 앞으로 사직에 몰아칠 13득점이라는 전대미문의 폭풍을 알리는 서막에 불과했다.


다시 차려진 만루 밥상, 한동희의 장쾌한 만루홈런 폭발

황성빈의 2루타로 2점을 추격하며 분위기를 완전히 가져온 롯데는 멈추지 않고 키움 마운드를 압박했다. 이어진 무사 2, 3루 상황에서 나승엽이 끈질긴 승부 끝에 볼넷을 골라 걸어나가며 다시 한번 무사 만루라는 완벽한 밥상이 차려졌다.

다음 타석에 들어선 빅터 레이예스는 우측으로 향하는 1타점 땅볼을 쳐내며 주자 한 명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점수는 8:3으로 5점 차까지 좁혀졌고, 여전히 주자는 루상에 가득 차 있었다. 뒤이어 타석에는 '거포' 한동희가 들어섰다. 단 한 방이면 경기의 판도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초구 직구가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왔지만 한동희의 방망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대로 1스트라이크를 내주며 지켜보던 팬들의 탄식이 새어 나오던 그 순간, 배동현의 2구째 투구가 이어졌다. 스트라이크 존 한참 위로 벗어나는 완전한 볼성 하이 패스트볼이었다. 모두가 그저 볼이라고 판단했던 그 순간, 한동희는 이미 역전의 찬스를 엿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방망이는 주저함이 없었다. 높은 공을 힘으로 억지로 잡아 결대로 밀어 친 타구는 호쾌한 궤적을 그리며 사직구장 좌중간 담장을 까마득하게 넘어갔다. 사직야구장을 뒤흔든 한동희의 전율적인 만루홈런으로 점수는 순식간에 7:8, 단 한 점 차까지 턱밑으로 추격했다. 8점 차의 절망이 순식간에 1점 차로 바뀐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손성빈의 끈질긴 집념과 사직 폭풍, 13득점 역전 대기록 완성

한동희의 그랜드슬램으로 8:7까지 턱밑 추격을 허용한 키움은 급히 마운드를 박지성으로 교체했다. 바뀐 투수에 고승민이 삼진, 윤동희가 뜬공으로 물러나며 2사가 되자 사직의 열기는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다. 그러나 꺼진 줄 알았던 불씨는 하위 타선에서 다시 살아났다. 전민재와 장두성이 끈질기게 안타를 터뜨리며 2사 1, 2루의 기회를 이어갔다.

타석에 들어선 것은 포수 손성빈이었다. 이미 7회말 첫 타석에서 볼넷을 골라 나가며 빅이닝의 서막을 열었던 그는, 이번에도 마운드의 원종현을 상대로 집요하게 파울을 쳐내며 타석을 길게 끌고 갔다. 무려 10구까지 이어진 숨 막히는 승부 속에서,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은 그의 끈질긴 집념은 결국 찬란한 결실을 보았다. 흔들리는 투수의 실투성 공을 놓치지 않고 좌중간을 완전히 가르는 역전 2타점 적시 2루타를 터뜨린 것이다. 8:7로 턱밑까지 쫓아가던 스코어는 순식간에 8:9로 뒤집혔고, 사직야구장은 승리의 함성으로 미쳐버릴 듯 요동쳤다.

한번 승기를 잡은 롯데의 방망이는 멈출 줄 몰랐다. 역전 허용 후 완전히 멘탈이 무너진 키움 마운드를 상대로 황성빈의 안타, 나승엽의 1타점 적시타, 레이예스의 2타점 2루타가 연달아 터지며 점수는 8:12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한동희가 다시 중전 적시타를 보태며 7회말에만 무려 13째 득점을 완성했다.

이날 7회말 롯데가 몰아친 13득점은 구단 역사상 한 이닝 최다 득점 신기록이자 KBO 역대 한 이닝 최다 득점 공동 2위에 해당하는 전설적인 기록이었다. 8:0의 절망을 8:13의 기적으로 바꾸어 놓은, 사직의 밤을 영원히 기억되게 만들 폭풍 같은 한 이닝이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야구가 우리의 삶에 건넨 메시지

7회말의 거세고 폭풍 같았던 13득점 잔치가 끝난 후에도 양 팀의 불꽃 튀는 화력전은 쉽게 식지 않았다. 키움 역시 8점 차 리드를 빼앗겼다고 해서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후반 이닝에서 양 팀은 홈런포를 주고받으며 치열한 난타전을 이어갔고, 결국 경기는 10:15라는 스코어로 롯데의 승리로 마감되었다. 경기 내내 양 팀 합쳐 25점이 터져 나온 그야말로 뜨겁고도 기나긴 혈투였다.

6회까지 8:0으로 뒤지며 영봉패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을 때, 승패를 의심한 사람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7회말 단 한 번의 기회에서 집중력을 발휘해 13점을 쓸어 담고 경기를 뒤집은 모습은 "역시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진리를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이 경기는 단순한 명승부를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남겼다. 살아가다 보면 8:0 스코어처럼 아무리 애써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무기력하게 밀려나는 순간을 맞이하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기회를 기다린다면, 단 한 번의 이닝만으로도 인생의 흐름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를 사직의 뜨거운 밤이 증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