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1열에서 마주한 역사적 순간: 6월 21일 LG 트윈스 승리 직관 대신 집관 후기
야구의 계절이 돌아온 이후, 퇴근길 발걸음은 언제나 거실 TV 앞으로 향한다. 개막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LG 트윈스의 경기를 챙겨보며 뜨거운 응원을 보내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매번 잠실야구장 관중석에 앉아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부르고 싶지만, 요즘 LG 트윈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다 보니 티켓 예매가 하늘의 별 따기다. 예매 창이 열리기가 무섭게 눈 깜짝할 사이 매진 행렬이 이어지니, 아쉬운 대로 안방 1열에 앉아 아늑하게 ‘집관’을 즐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지난 6월 21일 펼쳐진 두산 베어스와의 라이벌전만큼은 현장의 관중들이 부럽지 않을 만큼 완벽했다.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어놓고 캔맥주 하나를 까서 시원하게 '혼맥'을 즐기던 중, KBO 역사에 길이 남을 대기록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짜릿한 행운을 누렸기 때문이다. 혼자 마시는 맥주가 순식간에 샴페인처럼 달콤해졌던 그날, 잠실벌을 완벽하게 뒤흔들었던 역대급 홈런 축제와 대승의 기억을 웹진에 자세히 기록해둔다.
시작 전부터 후끈했던 잠실, '라이벌 부부'의 유쾌한 시구식
본격적인 승부가 시작되기도 전에 안방 1열의 시선을 사로잡은 최고의 관전 포인트가 있었다. 바로 연예계 대표 '잠실 라이벌 부부'인 김은희 작가와 장항준 감독의 시구 및 시타 행사였다.
LG 트윈스 팬인 김은희 작가는 줄무늬 유니폼을, 두산 팬인 장항준 감독은 두산 유니폼을 입고 시구 및 시타를 하기 위해 그라운드에 등장했다. 한 지붕 아래 살면서도 응원팀만큼은 타협이 없는 두 사람의 극명한 대비가 시작부터 큰 웃음을 주었다. 이후 경기가 진행될수록 중계 화면에 잡히는 둘의 표정은 그야말로 극과 극으로 갈리기 시작했다. 초반 선제점을 내며 환호하던 장항준 감독의 얼굴에는 점차 어둠이 짙어졌고, 반대로 김은희 작가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와 환희가 가득 차올랐다. 부부의 희비 교차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것 또한 집관러만이 누릴 수 있는 쏠쏠한 재미 요소였다.
1회 초의 아찔한 실수, 그러나 반전의 서막
드디어 플레이 볼이 선언되고 맞이한 1회 초, 시작부터 꽤 날카로운 타구가 날아왔다. 워낙 강한 타구이긴 했지만 마침 정면 코스였기에 '아웃이겠구나' 싶었는데, 평소 워낙 수비를 잘해주는 문보경 선수가 순간적으로 이를 놓치면서 아쉬운 실책성 플레이로 이어졌다. 결국 이 수비로 인해 두산에게 선제 1점을 먼저 내주고 말았다.
기분 좋게 시작한 혼맥 타임에 살짝 아쉬운 탄성이 터져 나온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요즘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엘지 트윈스가 아닌가. 초반에 1점쯤 내줘도 '우리 타선이 어떻게든 곧바로 뒤집어 주겠지' 하는 든든한 믿음이 베이스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 아쉬웠던 1점은 곧이어 펼쳐질 KBO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폭발'을 위한 완벽한 예방주사가 되었다.
1회 말, KBO 역사를 새로 쓴 '4홈런'의 기적
공수 교대 후 맞이한 1회 말, 안방 1열의 거실은 그야말로 거대한 축제용 폭죽이 연달아 터지는 듯한 전율에 휩싸였다. '금방 따라잡겠지' 했던 막연한 기대감은 상상을 초월하는 역대급 대기록으로 돌아왔다. LG 트윈스의 타선이 두산의 선발 마운드를 문자 그대로 완벽하게 초토화하며 KBO 리그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진기록을 완성했다.
그 짜릿했던 역사적 폭발의 순간들을 타석별로 자세히 되짚어본다.
- 1호 홈런(송찬의): 라인업을 봤을 때 가장 눈에 띈 것은 뜬금없이 1번 타자 리드오프로 이름을 올린 송찬의 선수였다. 보통 거포 한 방을 담당하던 선수가 왜 1번에 배치되었을까 생각해 보니 염경엽 감독의 철저한 데이터 야구와 기세가 배경에 있었다. 지난 19일 경기 전까지 상대 전적이 좋았던 선발 투수 벤자민을 저격하기 위해 1번으로 출전해 총 2루타 4방을 터뜨리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이어 20일에도 국가대표 에이스 곽빈을 상대로 1안타를 얻어내며 타격감이 물올라 있었다. 그 기세를 이어 21일에도 1번으로 출전한 송찬의는 풀카운트까지 가는 끈질긴 승부 끝에, 잠실구장에서 가장 깊고 먼 중앙 담장을 통쾌하게 넘겨버리며 대기록의 서막을 열었다.
- 2호 홈런(오스틴): 첫 홈런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LG의 복덩이 타자 오스틴이 타석에 들어섰다. 이미 송찬의의 홈런으로 흔들리던 두산 마운드를 향해 오스틴은 자비 없는 배팅을 선보였다. 실투를 놓치지 않고 통쾌한 타구 음과 함께 좌측 담장을 훌쩍 넘기는 백투백 홈런을 작렬시켰다. 특유의 파이팅 넘치는 세레머니를 보며 거실에서 혼맥을 즐기던 나 역시 맥주캔을 번쩍 치켜들 수밖에 없었다.
- 3호 홈런(박동원): 이후 몸쪽 직구 승부에 가차 없는 박동원의 방망이도 매섭게 돌았다. 선발 투수 잭 로그의 가라앉은 분위기를 완벽하게 파고든 박동원은 특유의 호쾌한 풀스윙으로 공을 받아쳤다. 맞자마자 홈런임을 직감할 수 있을 정도로 까마득하게 날아간 공은 그대로 외야 관중석에 꽂혔다. 이 세 번째 대포가 터지는 순간 잠실구장은 이미 축제 분위기로 가득 차올랐다.
- 4호 홈런(문정빈): 대기록의 화룡점정은 문정빈 선수가 찍었다. 한 이닝에 홈런 3개가 나와도 기적 같은 일인데, 문정빈 선수 마저 두산 마운드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시원한 홈런포를 가동했다. KBO 역사상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1회 초전박살 4홈런'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1회 말에 무려 4개의 대포를 얻어맞은 두산의 선발 투수 잭로그는 결국 1이닝만 소화한 채 조기 강판당했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상대 선발을 마운드에서 끌어내리는 모습을 보며 안방 1열의 흥분은 정점에 달했다.
폭풍 같았던 1회가 지나간 후 경기는 잠시 팽팽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두산도 마운드를 재정비하며 추가 실점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5회초까지는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엘지 트윈스의 방망이는 완전히 식은 게 아니라 잠시 타이밍을 재고 있었을 뿐이었다.
5회 말, 문정빈의 연타석 홈런포로 승기를 굳히다
지루해질 틈을 주지 않고 5회 말에 다시 한번 거실을 발칵 뒤집어놓는 명장면이 터져 나왔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1회에 4호 홈런의 주인공이었던 문정빈 선수였다.
타석에 들어선 문정빈은 상대 투수의 공을 그대로 받아쳐 잠실구장 중견수 방면으로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아치를 그려냈다. 자신의 오늘 경기 두 번째 홈런이자, 경기의 쐐기를 박는 홈런이었다. 이 한 방으로 스코어는 1:6으로 벌어졌고, 두산의 추격 의지에 완전히 찬물을 끼얹었다. 1회에 이어 5회까지 홈런포를 가동하는 문정빈 선수의 미친 타격감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눈을 의심케 한 두산의 험난한 실책 연발, 1:9로 도망가는 엘지 트윈스
경기 후반으로 접어든 6회 말, 이번에는 홈런포가 아닌 야금야금 상대를 압박하는 엘지 트윈스의 집중력과 두산의 아쉬운 실책이 맞물리며 경기는 완전히 엘지 쪽으로 기울었다. 안방 1열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상대의 무너지는 수비를 보며 안타까움이 드는 동시에, 야구의 묘미를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이닝이었다.
구본혁 선수의 삼진으로 1사가 된 이후 신민재 선수부터 다시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사구로 출루한 뒤 특유의 빠른 발로 도루를 감행했고, 이때 포수의 송구 실책까지 겹치며 순식간에 3루까지 안착했다. 뒤이어 송찬의 선수가 볼넷을 골라 나가며 만들어진 1, 3루 찬스. 타석에 들어선 박해민 선수가 우중간을 시원하게 가르는 1타점 적시타를 때려내며 신민재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스코어는 1:7이 되었고, 송찬의는 2루까지 무리 없이 진루하며 흐름을 이어갔다.
이어진 1, 2루 상황에서 오스틴 선수가 3루 방면으로 타구를 보냈다.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타구처럼 보였으나 두산의 수비진이 또다시 실책을 범하고 말았다. 그 사이 2루 주자였던 박해민이 쏜살같이 홈을 밟았고, 주자는 다시 1, 3루가 되었다. 점수 차이가 벌어진 탓인지 집중력이 흐트러진 두산의 내야 수비진은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었다.
압권은 다음 타석이었다. 문보경 선수의 타구가 투수 이병헌 선수에게 정면으로 향하면서 손쉬운 병살타 코스가 만들어졌다. '이번 이닝은 이렇게 끝나나' 싶던 찰나, 이병헌 선수의 2루 송구가 약한 바운드가 되어 박찬호 선수의 포구 실책으로 이어진 프로답지 못한 치명적인 실책이 나왔다. 결국 병살 처리는커녕 아웃카운트조차 제대로 올리지 못했고, 그 틈을 타 3루에 있던 박해민 선수까지 홈으로 들어왔다.
두산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자멸하는 이닝이었고, 엘지는 상대의 빈틈을 완벽하게 파고들며 순식간에 3점을 더 달아났다. 전광판의 점수가 1:9까지 벌어지는 모습을 보며 거실에서 나도 모르게 맥주캔을 들고 춤을 출 뻔했다. 사실상 승부의 추가 완전히 기울어버린, 엘지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고 통쾌한 순간이었다.
9회 초의 뒤늦은 추격, 그러나 승부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6회에 뼈아픈 연쇄 실책을 범한 이후, 두산 벤치는 더 이상 무너질 수 없다는 듯 선수들을 따로 집합시켜 정신을 차리자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오명이 남을 만한 경기력을 수습하려는 듯, 두산은 9회 초 마지막 공격에서 집중력을 발휘해 2점을 따라붙으며 마지막 자존심을 건 추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진 점수 차와 완벽하게 승기를 잡은 엘지 트윈스의 벽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후속 타자들을 차분하게 돌려세우며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올라가는 순간, 길었던 잠실 라이벌전의 막이 내려졌다.
역대급 대기록과 주말 3연전 스윕승, 이보다 완벽할 수 없는 집관
6월 21일의 경기는 단순한 1승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레전드 매치였다. KBO 역사상 최초라는 '1회 초전박살 4홈런'의 대기록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것도 모자라, 라이벌 두산을 상대로 주말 3연전 '스윕(전승)'을 달성하는 최고의 시나리오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개막 이후 매일같이 경기를 챙겨보며 티켓팅 실패의 아쉬움을 달래왔던 나에게, 이번 주말 3연전은 안방 1열 집관러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이자 선물이었다. 혼자 마시던 캔맥주가 그 어떤 축제보다 달콤하게 느껴졌던 최고의 주말, 엘지 트윈스의 거침없는 질주가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기대해본다.
